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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의 역사와 우리들(하나님의교회/안상홍님)

 

출처: 픽사베이 / 광야의 역사와 우리들(하나님의교회/안상홍님)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어서 가장 후회스러운 장소는 어디일까요. 아마 ‘가데스 바네아’일 것입니다. 이곳에서 있었던 일련의 사건으로 이스라엘 백성은 약속의 땅 가나안을 눈앞에 두고, 척박한 광야에서 38년을 더 유리해야만 했기 때문입니다(신명기 2:14, 민수기 14:33~34). 과연 이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요.


가데스 바네아 사건

 

츨처:픽사베이 /  광야의 역사와 우리들(하나님의교회/안상홍님)


출애굽한지 2년이 흐른 어느 날,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란 광야 가데스 바네아(Kadesh Barnea)에 이르렀습니다. 그곳은 가나안과 매우 가까운 접경지역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주저하지 말고 두려워하지 말고, 약속한 그 땅을 차지하라’는 명령을 내리셨습니다(신명기 1:21). 애초에 하나님께서는 출애굽 2년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나안으로 인도하실 계획이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이 내렸지만 백성들은 이구동성으로 건의했습니다. 그곳을 미리 정탐하여 작전을 세우자고 말입니다. 어느 길로 올라가야 할지, 어느 성을 먼저 점령해야 할지, 구체적이고 효율적인 군사적 방법을 찾아보자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모세는 각 지파에서 열두 명의 정탐꾼을 선발하여 가나안으로 파견했습니다(신명기 1:22~23, 민수기 13:1~16).


열두 정탐꾼은 가데스 바네아에서 출발하여 가나안 땅 깊숙한 곳까지 올라가 탐지했습니다. 가나안 땅의 최남단인 신 광야(Zin)에서부터, 북쪽 경계 지역인 하맛(Hamath)과 르홉(Rehob)에까지 탐지했습니다. 그 중간 지역인 헤브론(Hebron) 근처 에스골 골짜기에서는 각종 과일도 땄다. 총 40일 동안 가나안 남북지역 전체를 관통하여 살펴본 것입니다(민수기 13:21~25).


가나안 땅에 대한 열두 정탐꾼의 평가는 긍정적이었습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그곳은 최고의 경작지였습니다. 정탐꾼들은 석류와 무화과, 그리고 두 사람이 어깨에 메고 들어야 할 만큼 커다란 포도송이가 달린 가지를 보여주었습니다. 그곳이 매우 비옥하고 기름진 땅이라는 사실을 증명해 주는 것이었습니다(민수기 13:23, 26~27).


그러나 문제는 그 땅의 거민들이었습니다. 가나안 남쪽 지방에는 아멜렉 족속이, 산간 지방에는 헷, 여부스, 아모리 족속이, 해변과 요단 계곡에는 가나안 족속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다름 아닌 이스라엘을 끊임없이 괴롭힌 약탈자들입니다. 힘이 센 대장부였고, 신장이 크고 장대한 거인족이었습니다. 그에 비해 이스라엘은 메뚜기 같았습니다(민수기 13:28~29, 32~33).

여기서 ‘능히 이긴다’는 여호수아와 갈렙, ‘능히 이기지 못한다’는 열 정탐꾼의 의견으로 나뉘었습니다. 능히 이기지 못하는 요인은 ‘우리가 스스로 보기에는’에 초점이 맞춰 있었고, 능히 이긴다는 요인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에 초점이 맞춰 있었습니다(민수기 13:33, 14:9).


그날 이스라엘 백성들은 일제히 아우성을 쳤습니다. 밤새도록 통곡하며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하고 비방했습니다. ‘차라리 우리가 이집트 땅에서 죽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미워하여 이집트에서 이곳으로 끌고 왔다’, ‘하나님은 왜 우리를 이 땅으로 끌고 와서 칼에 맞아 죽게 하는가?’, ‘차라리 이집트로 돌아가자!’ (민수기 14:1~4, 신명기 1:27)


하나님께서 그들이 미워 거인족의 손에 죽게 하려고 이집트에서 건지셨습니까? 결코 아닙니다. 오히려 ‘이집트에서 해방시켜 달라’는 그들의 신음 소리에 응답하신 것입니다(출애굽기 6:5~6). 그들을 사랑하셨기에 학대와 고역의 땅에서 기적을 일으켜 해방시켜 주셨고, 그들을 사랑하셨기에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광야 길을 걷는 내내 아버지가 자식을 돌보듯, 불과 구름기둥으로 그들을 안아서 가나안 접경지역인 가데스 바네아에까지 이르게 하신 것입니다(신명기 1:31).


그러나 당사자들은 되려 하나님의 뜻을 왜곡하고 원망하고 비방했습니다. 왜 그들은 하나님께 대하여 이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었을까요.

 

 


하나님이 우리를, 잊은 것 같다!


넓고 험준한 광야길, 이 길을 걷는 시간이 생각보다 길어졌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에는 어느새 약속의 땅 가나안 보다, 당장 눈앞의 현실이 더 크게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약속의 확신이 없는 상태에서, 끝이 보이지 않는 사막을 걷는 그들은 그곳에서 발생하는 어려움을 인내할 수 없었습니다. 모든 것이 ‘시험거리’가 되어 버렸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잊지 않았다!


 
광야는 아무것도 없는 곳입니다. 그리고 어떤 것도 할 수 없는 곳입니다. 씨를 뿌릴 수도, 추수를 할 수도 없습니다. 사람이 무슨 노력을 해도 집, 식량, 옷을 구할 수 없습니다. 이런 절망적인 장소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생존에 필요한 기본적인 장비조차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버젓이 광야에서 생존할 수 있었을까요.


불가사의한 그들의 생존비법에는 ‘하나님’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농사를 짓지 않아도 먹고 마실 것을 다 채워주셨습니다. 만나를 비처럼 내려 양식을 주셨고, 반석에서 시냇물이 흘러나오게 하셨고, 또 바람으로 메추라기를 먼지처럼 내려주셨습니다. 구름기둥으로 낮의 뜨거운 햇빛을 막아주셨고, 불기둥으로 밤의 매서운 추위를 견딜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더구나 그 험난한 광야 길에서 백성들의 의복조차 헤어지지 않았고, 발이 부릍지도 않았습니다(신명기 8:4, 29:5).


이 모든 일을 보고서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손길과 관심을 믿지 않았습니다. 광야 한복판에서 약속의 땅은 보이지 않았고, 눈앞의 상황만 보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죄를 지었고, 거역했고, ‘하나님이 우리를 잊어버린 것 같다’, ‘하나님은 도대체 뭘 하고 계시냐’, ‘하나님은 도대체 어디 계시는 거냐’며 소리 높여, 혹은 마음 속으로 하나님을 시험했습니다.


저들이 사막에서 얼마나 그에게 반역하였던걸까요? 광야에서 얼마나 그의 마음을 아프게 해드렸던걸까요? 하나님을 거듭거듭 시험하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을 괴롭혔으며, 자기들을 원수의 손에서 구해 주시던 그 날, 그 힘을 그들은 까맣게 잊어버렸습니다. (공동변역 시편 78:40~42)


하나님은 그들의 손을 잡고 광야를 통과하고 계셨습니다. 단 ‘한시도’ 그들을 잊지 않고, 광야 너머의 그 아름다운 땅에 도착할 수 있도록 온 관심을 쏟으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이 때문에 하나님의 마음은 괴롭고 슬프고 아프셨습니다.

 

 

“우리는 당신들의 거울입니다”

 

츨처:픽사베이 /  광야의 역사와 우리들(하나님의교회/안상홍님)

 


현대인의성경 고린도전서 10장 1~11절
형제 여러분, 여러분은 옛날 우리 조상들이 광야에서 겪은 일을 잊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모세 때에 우리 조상들은 모두 구름의 인도를 받아 홍해를 건넜습니다. ···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들 대부분을 기쁘게 여기지 않으셨으므로 그들은 광야에서 멸망을 받았습니다. ··· 이런 일은 우리에게 거울이 되어 우리도 그들처럼 악을 좋아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경고해 주고 있습니다. ··· 우리는 그들처럼 시험하지 맙시다. ··· 우리는 그들처럼 불평하지 맙시다. 그들이 당한 이런 일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본보기가 되었으며 세상 끝날을 눈앞에 둔 우리에게 하나의 경고로서 기록되었습니다 


우리는 광야에 있지만 이를 항상 인지하지 못합니다. 실제 메마른 사막이 아닌 한국 또는 유럽, 아메리카 등의 대륙 어딘가에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진짜 광야를 걷고 있진 않지만 ‘믿음’의 광야를 매일같이 걷고 있습니다. 약속의 땅에 도착하기까지 원치 않는 길과 상황에 마주할 때도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음식이 넉넉하길 원했고, 삶이 안락하길 원했습니다. 육체의 소욕이 충족되길 바랐습니다. 원치 않는 상황과 어려움이 닥치면 가나안을 포기하겠다고 선언할 만큼, 그들의 마음은 약속의 땅이 아닌 광야에 있었습니다. 당장 눈앞의 현실이 그들의 머릿속에 가득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 관한 성경의 기록은, 오늘날 천국을 목표로 두고 광야를 걷고 있는 우리의 믿음을 되뇌게 합니다. 만약 지금의 광야 길에서 하나님의 약속이 공허해 보이고, 그 약속이 멀게만 느껴지고,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고, 원치 않는 상황에 처할 때마다 하나님의 약속보다 다른 것에 초점을 둔다면 실격자라고 말합니다(고린도후서 13:5).


광야는 잠시 머무르는 곳입니다. 약속의 땅으로 가기 위해 일정 기간 스치는 장소입니다. 구름기둥이 움직이면 언제라도 말뚝을 뽑고 이동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광야에서 기초를 박고, 그만 짐을 풀고 정착하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언제든 가나안을 향해 떠날 준비를 해야 합니다.


지난날 내가 광야에 남긴 발자취를 되돌아봅시다. 그동안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이끄셨고, 어떻게 도와주셨으며, 어떻게 보호해주셨고, 어떻게 사랑하셨는지 말입니다. 여러 가지 상황에 처할 때마다, 출애굽 1세대와 같은 완고한 태도와 불평, 믿음 없는 생각과 말과 행동, 원망의 소리에도 어떻게 참아주셨는지요.


완고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의심할 때, 그럼에도 나로 인해 웃고, 나로 인해 기쁨을 이기지 못하고, 나로 인해 애타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은 어떠하셨겠는가(스바냐 3:17). 내가 관심의 전부이고, 삶의 전부라고 말씀하신 하나님의 마음은 또 얼마나 애달프셨겠는지요(로마서 5:6~8, 이사야 49:15).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의 손을 잡고 광야를 통과하고 계십니다. 이제, 광야를 통과하면 마음 속에서 그리던 황홀한 세계가 눈앞에 펼쳐질 것입니다(요한계시록 21:4). 기억합시다. 광야는 하나님이 우리를 내던지고 잊어버리는 곳이 아닙니다. 우리가 넘어지고 포기하고 주저앉을 곳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늘의 상급이 기다리는 약속의 땅을 향해 힘차게 나아가야 할 곳입니다(디모데후서 4:5~8, 요한계시록 22:12).


만약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러한 광야의 의미를 깨달았더라면, 또 오늘날 우리들이 광야의 바른 의미를 깨닫는다면, 이 길이 그토록 괴로운 장소만은 아닐 것입니다. 단언컨대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는 지금의 이 광야 길은 특별한 여정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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