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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홍님 교리: 유월절의 혁명

goodgood 2021. 11. 8. 20:47

안상홍님 교리: 유월절의 혁명

 

1. 주전 1498년경 출애굽혁명

주전 1498년경 성력 1월 14일 늦은 밤, 고대 이집트 제18왕조 중의 한 사람으로 추정되는 파라오가 모세에게 소리쳤습니다.

공동번역 출애굽기 12장 31~41절
너도 이스라엘 백성도 어서 내 백성에게서 떠나가거라. 너희가 말하던 대로 가서 야훼(여호와)를 예배하여라. 너희가 요구한 대로 양도 소도 모두 끌고 가거라. ··· 이집트인들도 ··· 이스라엘 백성에게 어서 떠나달라고 재촉하였다. ··· 이스라엘 백성들은 ··· 이집트인들에게 은붙이와 금붙이와 옷을 내라고 하였다. ··· 이집트인들은 무엇이든지 달라는 대로 내어주었다. ··· 이스라엘 백성은 ··· 장정만도 육십만 가량이 되었다. ···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에 머무른 것은 사백삼십 년 동안이었다. 마침내 사백삼십 년이 끝나던 바로 그 날에 야훼(여호와)의 군대는 모두 이집트 땅에서 빠져 나왔다



파라오의 이 같은 행동은 돌연한 것이었습니다. 일찍이 이스라엘 민족은 파라오를 위해 국고성을 건축하는 일에 강제 동원됐습니다. 이집트인들은 무려 430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을 굴레 씌운 짐승처럼 학대하고 혹사시켰습니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절대권력자 파라오가 이스라엘 민족에게 ‘자유’를 공포한 것입니다. 희한한 점은 이스라엘 민족이 자유를 얻기 위해 시위를 벌이거나, 목숨을 내놓지도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급여를 달라고 무리 지어 행진하지도 않았다. 난폭한 행동과 폭력, 광기는 더더욱 없었습니다. 그런데 소름 끼칠 정도로 놀라운 결과를 맞이한 것입니다. 금, 은, 보석, 값진 물건들을 손에 쥔 채 해방과 자유를 얻은 것입니다. 도대체 ‘무엇’이 보호도 휴식도 보상도 없던 딱한 그들의 운명을 단숨에 바꿔버린 것일까요?


2. 출애굽혁명: 유월절 어린양의 희생

출처: 픽사베이 / 안상홍님 교리: 유월절의 혁명

현대인의성경 출애굽기 12장 1~13절
여호와께서 ··· 지금부터 너희는 이 달을 한 해의 첫 달로 삼고 ··· 가족 단위로 어린양을 한 마리씩 준비하라 ··· 이 달 14일까지 간직해 두었다가 해질 무렵에 모든 양을 잡고 피는 ··· 집의 문설주와 상인방에 바르고 ··· 그것을 먹을 때는 ··· 급히 먹어라. 이것은 나 여호와의 유월절이다. 그 날 밤에 내가 ··· 이집트에서 처음 난 것(장자)을 모조리 죽이고 ··· 그(유월절 어린양의) 피는 너희가 살고 있는 집의 표시가 될 것이다. 내가 피를 보면 너희를 넘어가겠다. 내가 이집트를 벌할 때에 너희에게는 아무 해가 미치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을 파라오의 손에서 건져내어 해방시키기 위해 어린양의 희생을 요구하셨습니다. 성력 1월 14일 저녁, 이스라엘 백성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았습니다. 각 가정마다, 집집마다 어린양을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희생 제물인 어린양을 잡아 생명을 끊었습니다. 여기저기에서 어린양이 고통스럽게 소리내어 죽으며 많은 피를 쏟아냈스니다. 그 피를 받아놓은 그릇에 우슬초 가지를 담근 후 집 좌우 문설주와 상인방에 발랐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장자를 구하기 위해, 장자를 대신해서 어린양이 죽임을 당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날 밤 파라오는 자신의 금쪽같은 태자를 잃고 오열했습니다. 재앙은 왕궁에만 일어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집트인들의 모든 장자가 죽임을 당했습니다(출애굽기 12:29~30). 양의 피를 바른 집을 제외하고 이집트 전역에는 전무후무한 큰 호곡으로 가득찼습니다. 무섭고 두려운 일을 치른 후에야 파라오는 이스라엘에 자유를 선포했습니다. 교만했던 이집트인들도 이스라엘의 자유를 재촉했습니다.

눈여겨볼 것은 이스라엘 민족의 자유를 대신한 어린양입니다. 60만 명. 당시 이스라엘 장정의 수입니다. 60만 가정이 1마리의 양을 잡는다고 가정하더라도 무려 60만 마리의 어린양이 희생되는 것입니다. 그 어마어마한 생명이 흘린 피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3.유월절 어린양의 실체

출애굽기 34장 25절
너는 내 희생의 피를 유교병과 함께 드리지 말며 유월절 희생을 아침까지 두지 말며 

그런데 이상한 일입니다. 이스라엘의 해방은 ‘흠없는 어린양의 피’로 된 것이 틀림없는데, 성경은 이를 ‘하나님의 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가늠하기조차 어려운 유월절 어린양의 피의 무게는 곧 하나님이 흘리실 피의 무게라는 의미입니다. 도대체 어찌된 영문일까요.

구약시대 이스라엘에서 희생 제물로 사용된 어린양은 예수 그리스도 곧 사람으로 오신 하나님을 상징하는 모형(模型)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 지역에서 “우리의 유월절 양이신 그리스도께서 희생 제물이 되셨습니다”라고 외칠 때, 그 실상(實像)이 세상에 드러났습니다(고린도전서 5:7). 이에 앞서 침례 요한도 예수님을 가리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양”이라고 증거했습니다(요한복음 1:29).

그 동안 이스라엘 민족을 대신해 수없이 피 흘린 어린양은, 인류를 대속할 희생 제물인 예수님을 상징했던 것입니다. 유월절 양이 그랬듯이,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살과 피를 모두 내어주셨습니다.



 4. 유월절 죄 사함의 혁명

안상홍님 교리: 유월절의 혁명

현대인의성경 누가복음 22장 39~44절
예수님이 ··· 무릎을 꿇고 이렇게 기도하셨다. ‘아버지, 아버지께서 원하신다면, 이 고난의 잔을 내게서 거두어 주십시오. 그러나 제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십시오’ ··· 예수님이 괴로워 몸부림치시며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자 땀이 핏방울같이 되어 땅에 떨어졌다 

새 언약 유월절 예식을 마친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자신에게 다가올 죽음을 앞두고 몹시 근심하며 괴로워하셨습니다. 오랜 시간을 절규하셨습니다. 이윽고 기도하면서 핏방울 같은 땀이 흐르더니 땅에 떨어졌습니다. 땀이 핏방울같이 되는 현상을 의학적으로 ‘혈한증(血汗症)’이라고 부릅니다. 바늘이 살을 찌르는 듯한 고통을 수반하며 극도의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을 때 발생한다고 합니다. 예수님의 심정은 그 정도로 슬프고 절박했던 것입니다. 그렇게 사람으로 오신 하나님은 유월절 어린양의 희생 제물로서 고난의 길을 걸어가셨습니다.

요한복음 19장 18~30절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았다 ··· 예수께서는 모든 일이 이루어졌음을 아시고 ··· “다 이루었다” 하고 말씀하신 뒤에, 머리를 떨어뜨리시고 숨을 거두셨다 

예수님은 무엇을 다 이루신 것일까요. ‘다 이루었다’는 ‘다 치렀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일전에 예수님께서는 많은 사람들의 죗값을 치르기 위해 이 땅에 오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마가복음 10:45). 곧 인류의 죗값을 다 갚고 ‘죄 사함’을 준 일, 그 일을 이루셨다는 것입니다. 죄 사함은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는 예식인 새 언약 유월절 자리에서 선포하셨습니다(마태복음 26:17~28). 옛적 유월절 어린양의 살을 먹고 피에 참여한 이스라엘이 해방의 자유를 누렸듯, 그 실체이신 예수님의 살을 먹고 피에 참여한 이들에게 죄 사함의 자유를 누리게 하신 것이다. 죄 사함의 혁명이 시작된 것이다(로마서 6:6).

혁명의 중심이 되는 진리, 새 언약 유월절은 초대교회 사도들에 의해 곳곳에 전파됐습니다. 이스라엘은 물론 안디옥, 루스드라, 에베소, 빌립보, 데살로니가 등 소아시아, 유럽 지역까지 확대됐습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의 살과 피, 눈물, 희생이 담긴 이 진리를 세상 끝까지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고린도전서 11:23~26). 그러나 예수님이 승천하시고 사도들이 모두 순교를 당한 AD 100년경부터 예수님의 ‘부활’만을 강조한 로마가톨릭에서 예수님의 ‘죽음’의 대가로 세워주신 유월절을 없애려는 움직임이 있었고, 결국 325년 니케아 종교회의에서 유월절이 완전히 폐지되고 말았습니다. 예수님의 피를 힘입을 수 있는 유일한 진리가 사라지고 만 것입니다.



5. 또 다시, 죄 사함의 혁명을 건네기 위해 안상홍님 오시다

안상홍님 교리: 유월절의 혁명

히브리서 9장 28절
구원(죄 사함)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두 번째 이 땅에 다시 오겠다 

하나님은 천지에 충만하신 분입니다(예레미야 23:24). 영적으로 우리와 늘 함께 계신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왜 성경은 그리스도의 임재에 대해 ‘두 번째’라는 서수를 기록했을까요. 그 해답은 ‘첫 번째’ 임재하셨던 모습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곧 ‘첫 번째’ 오셨던 모습과 동일하게 등장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사람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셔서 죄 사함에 이르게 하는 새 언약의 진리를 다시 회복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이사야 25:6~9).

이 땅은 하나님에게 좋은 추억을 안겨 준 곳이 결코 아닙니다. 십자가의 끔찍한 고통을 경험하신 악몽 같은 장소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의 모습으로 다시 오시기에, 분명 누군가로부터 미치광이 취급, 조롱, 멸시, 모욕을 받으실 것입니다. 그럼에도 그것을 감수하고 오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죽음이 예정된 이 땅에 말입니다.

세상에는 수많은 신학자, 목사들이 있고 그들이 매년 내는 논문은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누구도 유월절의 진리는 알지도, 가르치지도, 회복하지도 못했습니다. 모두 성경에 없는 교리인 일요일 예배, 수요 예배, 크리스마스를 전파하고 있을 때 유일한 한 사람, 안상홍 이 분만은 예수님의 피로 완성하신 새 언약 유월절을 지켜야 한다고 목놓아 외치셨습니다. 약 1600년만에 죄 사함의 진리가 세상에 다시 드러난 것입니다.

그렇게 안상홍님으로부터 시작된 구원의 불씨는, 하나님의 교회 성도들에 의해 전 세계로 날아가 곳곳에서 생명의 혁명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아시아, 유럽, 북아메리카, 남아메리카, 아프리카, 오세아니아 등 5대양 6대주 175개국에서 새 언약 유월절을 지키는 회복운동이 일어난 것입니다. 온 세계에 죄 사함의 길이 다시 활짝 열린 것입니다.

Freedom is not free. 직역하자면 ‘대가 없는 자유는 없다’, ‘자유는 공짜가 아니다’는 의미입니다. 무려 1600년만에 회복된 영적 자유는 결단코 ‘그냥’, ‘값없이’, ‘저절로’ 생긴 결과가 아니었습니다. 가난한 시대에,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새 언약 진리를 전파하며 숱한 외로움을 참으셨습니다. 노구에 무거운 가방을 메고 산길을 오르며 쓰러져도 멈출 수 없으셨습니다. 가시덤불이 살을 깊이 찔러도 피멍든 발걸음을 계속 옮기셔야 했습니다. 죄에서 자유를 얻게하는 이 진리를 알려야 한다는 애타는 마음에서입니다. 그렇게 사람의 모습으로 오신 아버지는 또 다시, 외롭고 고단한 길을 걸어가셨습니다.

“다 이루었다” 이 한마디로 모든 것이 쉽게 된 것이 아닙니다. 유월절 양으로서 십자가의 끔찍한 고난을 감내하시고, 잃어버린 유월절을 되찾으시려 다시는 오고싶지 않은 곳, 이 땅에 오셔야만 했던 아버지의 결단이 있었습니다. 현재 우리가 누리고 있는 죄 사함의 이면에는 아버지의 눈물, 땀, 피, 희생이 존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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