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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교회 설교_ 천국의 가치를 깨닫는 자

 

밭에 감추인 보화 비유

 

출처_픽사베이 / 하나님의교회 설교_ 천국의 가치를 깨닫는 자

 

마태복음 13장 44절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느니라

 

비유 속에는 한 사람이 등장합니다. 그는 밭주인에게 고용되어 밭을 경작하다가 뜻밖에 땅 속에 묻힌 엄청난 보화를 발견했습니다. 그는 그것을 다시 묻어 두고 돌아가서 자신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샀습니다. 한편 밭주인은 그곳에 보화가 감추어 있는지 몰랐습니다. 자기가 숨겨둔 보화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화가 숨겨진 밭을 아무 생각 없이 팔았습니다.

땅에 보화를 감추는 일은 고대 이스라엘에서도 볼 수 있는 광경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전쟁의 땅이었다. 전투와 포위, 점령과 착취, 수탈하는 정복의 역사로 가득했습니다. 때문에 부유한 유대인들은 전쟁이 시작될 조짐이 보이면 집에 있는 귀한 물건이나 보석, 돈을 깊숙한 땅속에 묻었습니다. 이것이 당시 재산을 지키는 가장 안전한 방법이었습니다.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는 “유대인들은 전쟁의 불확실한 상황을 대비하기 위해 금과 은과 귀한 가구들을 땅속에 파묻어 두었다”고 기록했습니다.

그런데 보물을 땅에 숨겨둔 사람이 전쟁이나 불의의 사고로 죽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이런 경우 감추인 보화는 수십 년 또는 수백 년 동안 땅속에 묻혀 있게 됩다.

비유에 등장하는 일꾼의 관심은 오직 밭을 향해 있었습니다. 밭의 가치를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밭에 감추인 귀한 보화를 발견한 후 너무도 기쁘고 황홀하여, 그것을 얻기 위해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기꺼이 포기했습니다.

 

값진 진주의 비유

 

출처_픽사베이 / 하나님의교회 설교_ 천국의 가치를 깨닫는 자

 

마태복음 13장 45~46절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으니 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발견하매 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사느니라

 

예수님의 비유 속에는 진주를 전문으로 하는 도매상이 등장합니다. 그는 품질 좋은 진주를 구입해 되파는 일을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주 희귀하고 값진 진주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밭에 감추인 보화를 발견한 사람처럼 그는 망설이거나 수지 타산을 생각할 필요도 없이,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팔아 그 진주를 샀습니다.

당시 진주는 가장 비싼 보석류였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 가치가 증대하여 부자들은 투자를 위해 진주를 구입했습니다. 로마 역사 학자 수에토니우스(Suetonius)는 로마 황제 비텔리우스가 어머니의 진주 귀걸이 한 개로 어마어마한 전투 자금 전부를 조달했다고 기록했습니다. 이탈리아 베네치아 상인 마르코 폴로(Marco Polo)는 인도 남서부의 말라바르 왕을 만난 일에 대해 ‘도시 하나의 배상액보다 진주가 더 가치 있다’고 기술했습니다. 유대교 율법서인 탈무드에는 ‘가격을 매길 수 없는 진주’라고 설명했습니다. 예수께서도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당시 부정한 동물로 돼지를, 귀한 보석으로 진주를 대비시키신 것입니다(마태복음 7:6). 아름다움과 모양과 크기를 잘 갖춘 진주 하나는 엄청난 가치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간단한 두 비유가 전하는 메시지는 확실합니다. 천국은 누구나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오직 그 나라의 측정할 수 없는 가치를 깨닫고, 자신이 추구하던 전부를 기꺼이 버리는 자들을 위한 것입니다. 밭의 보화나 값진 진주를 발견한 사람은 자신의 전부를 ‘기쁜 마음’으로 처분했습니다. 그들은 처분한 물건에 미련을 두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소유를 처분하는 일은, 엄청난 보화를 얻기 위해 기쁘게 치를 수 있는 대가였습니다.

 

가룟 유다와 사도 바울

출처_픽사베이 / 하나님의교회 설교_ 천국의 가치를 깨닫는 자

 

가룟 유다(Judas Iscariot). 그는 열두 제자 가운데 한 명으로, 처음에는 예수에 대한 믿음과 열정이 있었던 자입니다. 다른 제자들처럼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르며 하나님 나라를 전파했습니다(누가복음 9:1~2). 그리고 금전 관리도 도맡았습니다. 어느 단체든지 금전 관리는 깊은 신뢰를 얻은 사람들이 수행합니다. 그는 세리 출신의 마태가 있었음에도 초대교회의 재무를 관리했을 정도로 신임을 받았고, 수리에 밝고 유능했습니다.

유다는 예수님과 3년의 공생애를 함께 하며, 예수께서 이루시는 복음의 기적을 목도했고, 예수님과 한 공간에서 예배를 드렸으며, 예수님의 음성을 직접 들었습니다. 그는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값진 진주를 소유한 사람처럼, 세상의 일시적인 보화는 천국이라는 엄청난 보화 앞에서 기꺼이 버릴 수 있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는 예수의 가르침을 가까이에서 들었습니다. 또 잃어버린 후 다시 찾은 한 마리의 양과 한 개의 동전에 대한 비유를 통해, 하늘에서 잃어버린 한 사람 때문에 눈물 흘리시고 찾은 한 사람 때문에 더할 나위 없이 기뻐하시는 예수의 모습도 보았습니다. 성찬식을 행하시기 전, 제자 한 사람 한 사람의 발을 씻겨 주시며 형제끼리 서로 미워하지 말고 사랑하라는 예수의 애달픈 눈빛도 보았습니다. 유다는 세상 속에 감추인 천국의 보화, 곧 그리스도를 발견했고 그분 가까이에서 그분의 사랑과 관심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가룟 유다는 천국이라는 보물을 얻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천국의 대열에서 탈락하여 영원히 저주받았습니다(마가복음 14:21, 사도행전 1:18). 무엇이 그의 운명을 잔인하게 바꾸어 놓았을까요.

현대인의성경 요한복음 12장 4~6절
가룟 유다가 ··· ‘왜 이 향유를 300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지 않았소?’ 하였다. 그가 이렇게 말한 것은 가난한 사람들을 생각해서가 아니라 그는 돈궤를 맡고 있으면서 거기 있는 돈을 자주 훔쳐내는 도둑이었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베다니에 있는 문둥병자 시몬의 집에 계실 때였습니다. 마리아가 아주 값진 향유 한 병을 예수의 머리에 부었습니다. 이때 유다는 매우 분개하며 마리아를 호되게 꾸짖고 책망했습니다(마가복음 14:4~5). 그는 향유를 팔아 가난한 자를 구제해야 된다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실은 그 향유가 노동자의 약 일 년치 품삯에 해당하는 가치가 있음을 알고 이를 횡령하여 개인의 이익을 취하려고 했습니다. 그 돈을 자신의 주머니에 채우지 못한 것이 억울하고 분했습니다.

돈을 탐하는 마음은 그에게 치명적 올무가 되었습니다. 이후 유다는 예수를 시기하고 비방하는 종교 기득권 세력, 곧 대제사장들에게 달려가 “내가 예수를 넘겨주면 그 값으로 얼마를 주겠소?”라고 말하며 돈을 요구했습니다. 그리고 스승을 파는 조건으로 은화 30냥을 받았습니다. 스승의 목숨 값으로 받은 30냥은 당시 이스라엘에서 노예를 거래하는 금액에 불과했습니다(출애굽기 21:32).

예수께서는 유다가 배반할 것을 아셨습니다. 성력 1월 14일 저녁 마지막 유월절 성만찬 자리에서 예수는 “너희 중에 하나가 나를 배반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유다의 죄를 지적하신 것이다. 어쩌면 유다로 하여금 회개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주셨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유다는 이 기회를 경시하고 자신의 욕심을 따라 행동했습니다. 자신의 안락과 영리를 우선순위로 여긴 유다에게 있어서, 예수께서 3년 동안 친히 보여주신 교훈과 가르침은 더 이상 귀한 보화가 아니었습니다.

오늘날 심리학자들은 유다가 배신한 이유를 물욕, 탐욕, 명예욕, 이기심의 결합으로 꼽습니다. 사람이 이런 것들을 최고의 가치로 둘 때 타인에 대한 믿음과 의리, 신념을 깨뜨린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보화에 더 큰 가치를 두었던 가룟 유다의 눈에, 스승이자 메시아가 고작 30냥의 가치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았던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입니다.

반면 가치를 제대로 측정하여 충성의 길을 택한 이도 존재합니다.

공동번역 빌립보서 3장 4~5절
만일 어떤 사람이 세속적인 것을 가지고 자랑하려 든다면 나에게는 자랑할 만한 것이 더 많습니다. 나는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서도 베냐민 지파에서 태어났으며 난 지 여드레 만에 할례를 받았고 히브리 사람 중의 히브리 사람입니다. 나는 율법으로 말하면 바리사이파 사람이며 ··· 

 

사도 바울(Apostle Paul)은 경제적으로 부유하고 학문과 철학이 발달한 ‘길리기아 다소’에서 태어나 8일만에 할례를 받았습니다. 그는 초대 왕 사울을 배출한 왕족 출신의 베냐민 지파이고, 날 때부터 로마 시민권자였습니다. 또한 바리새인으로 예루살렘에서 우수한 훈련을 받았습니다. 최고의 랍비이자 위대한 학자로 존경받는 가말리엘을 스승으로 둔 문하생이었습니다. 그야말로 여느 유대 민중보다 뛰어난 엘리트였습니다.

바울 역시 자신의 배경과 학문적 지식에 대해 상당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사도행전 22:3). 그런데 그가 돌연 자신이 자랑스럽게 여기는 보화들을 ‘배설물’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는 왜 이런 말을 남겼을까요.

새번역 빌립보서 3장 7~9절
나는 내게 이로웠던 것은 무엇이든지 그리스도 때문에 해로운 것으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귀하므로, 나는 ··· 그 모든 것을 오물로 여깁니다. 나는 그리스도를 얻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으로 인정받으려고 합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를 만난 이후 권력, 명예, 지위, 부 등을 버렸습니다. 과거에 소중하게 여긴 그것들이 ‘그리스도’라는 고귀한 가치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이후 바울은 사람으로 오신 그리스도와 새 언약 복음을 전파하는데 집중했습니다. 그 과정은 순탄치 않았습니다. 그는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성도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나는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이나 맞았고, 한 번 돌에 맞고, 여러 번 감옥에 갇히고, 수없이 굶고 추위에 떨고 죽을 고비를 겪었지만, 모든 교회들에 대한 염려로 마음이 짓눌렸다’고 전했습니다(고린도후서 11:23~29). 바울은 자신의 고난보다,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과 진리를 저버리는 성도들이 있을까 염려했던 것입니다.

당시 기득권층의 바리새인으로 있었다면 이 같은 고난은 받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고난을 택했습니다. 고난을 즐거움으로 승화시킬 만큼 귀한 보물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세상에 감추인 그리스도 곧 천국의 보화였습니다(로마서 11:33). 바울은 천국이라는 최고의 가치를 발견했기에, 그동안 붙잡고 있었던 것들을 배설물처럼 여길 수 있었습니다. 베드로, 안드레, 야고보, 요한, 에바브로디도 등 초대교회 사도들과 성도들의 믿음이 이와 같았습니다.

 

에서와 야곱

 

출처_픽사베이 / 하나님의교회 설교_ 천국의 가치를 깨닫는 자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구약의 인물들 중 에서(Esau)와 야곱(Jacob)을 만날 수 있습니다. 둘은 쌍둥이로 태어났지만 정반대의 인물로 조명됩니다. 그들의 운명을 가른 것은 ‘장자권’이었습니다. 장자권은 숨은 보화와 같았습니다. 가치를 깨달은 사람에게는 그것이 값진 것이었지만, 깨닫지 못한 사람에게는 숨은 그림에 불과했습니다. 에서가 동생 야곱에게 스스럼없이 장자권을 판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에서의 관심은 당장 자신의 주린 배를 채우는데 있었습니다. 지금 눈앞에 보이는 실익에 더 큰 가치를 두었던 그의 눈에는 장자권보다 팥죽 한 그릇이 더 가치 있게 보였습니다. 또 장자권을 판다고 해서 당장 손해 보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결국 장자권을 판 에서의 행동은 장자의 권리를 가볍게 여기는 사고방식, 곧 그의 가치관을 그대로 드러낸 것이었습니다(창세기 25:29~34).

반면 야곱은 달랐습니다. 장자권이 당장 눈에 보이는 실익을 주는 것은 아니지만, 그는 장자권 안에 감추인 가치를 보았습니다. 그것은 단순히 아버지 이삭의 재산을 유업으로 받는 것을 넘어, 하나님 나라의 유업과 관련이 있었습니다. 때문에 그는 장자권을 늘 갈망했고, 마침 이를 가치 없게 여긴 형 에서에게서 샀습니다. 그리고 끝내 형 대신 장자의 축복을 받았다. 이로 인해 야곱의 삶에 고난이 찾아왔다. 그는 에서의 분노를 피해 고향을 떠나 외삼촌 라반(Laban)의 집으로 피신했습니다. 거기서 야곱은 라반을 섬기며 머슴처럼 일했고 갖은 고생과 시련을 겪었습니다. 낮에는 더위와 싸우고 밤에는 추위에 시달리며 눈 붙일 겨를도 없이 일했습니다. 이 같은 삶은 무려 20년 동안 이어졌습니다(창세기 31:38~41). 라반의 학대를 피해 그곳을 떠난 후에도 야곱의 고난은 계속되었습니다. 그는 고향으로 돌아가는 얍복 나루에서 환도뼈가 부러지는 아픔을 겪었습니다(창세기 32:22~25).

이쯤 되면 하나님의 약속이든 장자권이든 모두 포기할 만도 한데 그는 묵묵히 고난을 견뎌냈습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는 장자권 안에 감추인 가치, 하나님 나라의 유업을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창세기 28:13~14). 긴 시간 머슴살이를 하더라도, 환도뼈가 위골되어 몸이 부서지더라도 축복을 원했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장자권의 가치를 깨닫고 고난을 이긴 야곱의 이름을 ‘이스라엘’로 바꾸셨고, 형 에서가 아닌 동생 야곱의 열두 아들로 하나님 나라인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를 형성하게 하셨습니다. 오늘날까지 ‘이스라엘의 조상’이라는 위대한 칭호를 얻고 있는 사람이 에서가 아닌 야곱인 이유입니다(창세기 49:1, 28).

에서와 야곱의 기록은 단순히 장자권을 팔고 샀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가룟 유다와 사도 바울의 기록도 비단 물질을 탐하고 버렸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가치의 문제를 언급하고 있는 것입니다. 가치관에 따라서 보는 것이 달라지고, 행동하는 것이 달라지고, 관점이 달라지고, 목표가 달라진다. 그리고 결과도 달라집니다.

현재 우리는 과거의 기록들을 통해 수많은 교훈을 얻고 있습니다. 이제 자신에게 질문할 차례입니다. 나는 어떤 모습인가. 세속적 욕심, 교만, 불순종, 자존심, 미움, 원망, 탐심, 헛된 욕망의 걸림돌에 걸려 천국을 헐값으로 치부하고 있는가. 아니면 천국이라는 보화가 너무도 값지고 귀해서 그것을 얻기 위해 세상의 작디작은 보화를 버리고 있는가. 단언컨대 천국은 그 나라의 어마어마한 가치를 깨닫고 노력하는 자들이 들어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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